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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촌황희선생 사상 연구회-3회 황영주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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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791회 작성일 14-04-18 12:59

본문


趣 旨 文 (취지문)



1. 자랑스러운 장수 황씨(長水 黃氏) 명문거족(名門巨族)의 한사람으로서

세종대왕 시
대(世宗大王 時代) 를 해동(海東)의 요순시대(堯舜時代)로 이룩하고,

겨레의 모든 생
활(生活)을 존중(尊重)하는 정치제도(政治制度)의 완성(完成)과

찬란(燦爛)한 국태민
안문화(國泰民安文化)의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창조(創造)하시기에 그 주도적(主導的)
역할(役割)과 절대적(絶對的)인

공헌(貢獻)을 영상(領相)으로서 24년간(年間) 청백리
(淸白吏)의 영예(榮譽)속에

정사(政事)를 수행(遂行)하신 방촌선조(庬村先祖)의 위
대(偉大)한 정치(政治)

사상(思想)과 업적(業績)들에 대한 정당(正當)한 평가(評價)의

필요성(必要性)이 절실(切實)하던 바,


2.2009年 12月 황용주 박사(黃鏞周 博士)와 황이연(黃利淵) 전 보훈처

관리관서울청장
황영하 전장관외(黃榮夏 前長官外)16명이

가칭(假稱) 방촌사상연구회(庬村思想硏究
會) 설립(設立)을 위(爲)한

발기인(發起人)이 되어 본격적(本格的)인 방촌사상연구
(庬村思想硏究)

사업(事業)을 추진(推進)하고자 시도(試圖)했던 바, 각자사정(各自事

情)이 여의(如意)치못하여 부득이(不得已) 미루어 왔었으나.

현 대종회 황승현회장(現 大宗會 黃承顯 會長)과

황병연 사무처장(黃丙淵 事務處長)의

적극적(積極的)인 노력(努力)과 치밀(緻密)한 계획(計劃)을 수립(樹立)하여

정성(精
誠) 어린 설득력(說得力)을 발휘(發揮)한 결과(結果) 소기(所期)의

성과(成果)를 얻어모임을 개최(開催)할 수 있게 되어 본(本)사업발전(事業發展)

의 전
망(展望)을 예견(豫見)할 수 있게 되었다.



3.방촌선조(庬村 先祖)께서는 고매(高邁)한 인격(人格)과

탁월한 능력으로 옳은일을 일관(一貫)되게 실행(實行)할 수 있는용기(勇氣)를

갖추시
어 옳은 일의 수행(遂行)을 방해(妨害)하는 갖가기 유혹(誘惑)과

장애(障碍)를 극복
(克腹)해줄 굳센 의지력(意志力)으로 세종대왕(世宗大王)을

도와 위민(爲民)의
어진 정사(政事)를 베풀고 청사(靑史)에 빛날 찬란(燦爛)한

문화(文化)의 꽃을 피웠던
엄연(嚴然)한 역사적 사실(事實)을 재인식(再認識)

케하여 앞으로 정계인(政界人)들의 귀감
(龜鑑)으로 삼아야 할 것 이다.

애민정신(愛民精神)과 투철(透徹)한 인본사상(人本思想)은 시대(時代)를

휠신 앞지르
고 넓은 경험(經驗)을 쌓으시어 정치적(政治的) 역량(力量)을

성장(成長)시켜 한(限)
없이 관대(寬大)하면서도 무섭게 기강(紀綱)을 세웠기 때문에

황희(黃喜)가 있는 한(限)
조정(朝廷)의 질서(秩序)가 잡히고 정치(政治)가

원활(圓滑)하게 이루어지고 백성(百
姓)은 나라를 신뢰(信賴) 할수 있었던 것이다.



4. 세종(世宗)과 황희(黃喜)는 마치 고기와 물과 같아서 세종(世宗)이 없었다면

황희
(黃喜)가 있을수 없었고,

황희(黃喜)가 없었다면 세종(世宗)은 빛나는 업적(業績)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세
종(世宗)의 정치(政治),군사(軍事), 문화(文化), 과학(科學)

예술(藝術)등(等) 모든
분야(分野)에 걸쳐 위대(偉大)한 업적(業績)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황희(黃喜)와 맹
사성(孟思誠)등(等) 청렴(淸廉)하고

유능(有能)한 신하(臣下)를 등용(登用)하여 정치
(政治)를 새롭게

이끌었기 때문에 가능(可能)했던 것이다.



5. 황희선조(黃喜先祖)께서 생애(生涯)를 통(通)하여 실천(實踐)해 보여주신

관직수
행(官職遂行) 능력(能力)과 청렴(淸廉), 근검(勤儉), 도덕(道德),

인의등(仁義等)의
덕목(德目)을 겸비(兼備)한 청백리(淸白吏)의 표상(表象)인바

표피적(表皮的 )외래문화(外來文化)에 맹종(盲從)하
며 무조건(無條件)

동양문화(東洋文化)를 배척(排斥)하는 자학(自虐)을 반성(反省)하
여야하며

경제적(經濟的) 풍요(豊饒)는 모든 것을 충족(充足)시킬것이라는

황금만능
(黃金萬能) 주의적(主義的) 환상(幻想)에서 벗어나 각성(覺醒)

하여야 할 것이다.


6. 서양(西洋)의 과학기술문명(科學技術文明)이 세계(世界)의 어느 지역(地域)

보다도
유독 한국(韓國)과 일본(日本),중국(中國)에 급속(急速)히

도입정착(導入定着)되고 이
세나라가 성공적(成功的)으로 현대화(現代化)의

길로 접어든 경의(敬意)로운 역사적
(歷史的) 사실(事實)은 西洋의 물질문명(物質文明)

을 포용(包容)하고도 남는 광대(廣
大)하고 심오(深奧)한 유교교육(儒敎敎育)

이라는 정신문명(精神文明)의 전통문화(傳統
文化)가 저변(低邊)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양(東洋)의 주자학(朱子學)과 서양(西洋)의 과학기술(科學技術)

의 성공적(成功
的)으로 접목(椄木)되었기에 가능(可能)한 것이다.



7. 방촌사상연구회(
庬村 思想 硏究會) 창설(創設)과 더불어 유능(有能)한

전문학자(專
門學者)들의 역사자료발굴(歷史資料發堀)과 이론(理論)

체계확립(體系確立)으로 방촌
(厖村)의 도덕(道德)과 윤리(倫理)사상(思想)을

보급(普及), 신시대(新時代)의 정신문
화(精神文化)를 창조(創造)하여 유덕(有德)

한 시민(市民)들이 자유(自由)로운 삶. 스
스럼없는 삶. 자율적(自律的)삶.

마음의 평화(平和)가 깃든 삶. 당당(堂堂)한 삶. 그
래서 즐겁고 행복(幸福)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유덕(有德)한 삶은 동(東) 서양(西洋)을 막론(莫論)하고 모든

철학자(哲學者)
가 희구(希求)하는 삶인 것이다.

방촌사상(厖村思想)과 정치철학을 기반(基盤)으로 이루어지는 신시대(新時代)의

새로운 윤리(倫理) 도덕
(道德)의 구현(具現)으로 신뢰(信賴) 사회(社會)

구축(構築)은 필연(必然)코 이루어
질것이며, 이는 우주(宇宙) 대운행(大運行)의

자연(自然)스러운 흐름이며 역사(歷史)
의 법칙(法則)이다.



2013年 8月 13日


장수황씨 대종회 고문 長水黃氏 大宗會 顧問

(사)방촌황희선생사상연구회 고문 (社)庬村黃喜先生思想硏究會 顧問


황 영 주

黃 榮 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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